▲[연합뉴스]
-기초항암제 수급 불안/효과 좋은 항암제 찾았는데/갑자기 ‘처방불가’ 날벼락/5000~2만원대 싼 약값에/제약사들 줄줄이 생산 중단-
[경상뉴스=김영수 선임기자] 침샘암 4기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 중이던 60대 환자 A씨는 최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겨우 잘 듣는 항암제를 찾았는데, 갑자기 생산이 중단돼 처방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체 약제를 찾기 위해 한 달을 허비하는 사이 병세는 불안정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긴급 수입 물량이 확보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A씨는 언제 다시 생명줄과 같은 약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수십 년간 암 환자들에게 처방돼 온 표준항암제 수급망이 불안하다. 수십 년 전 책정된 낮은 약가가 유지되면서 제약사들이 적자를 견디다 못해 생산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폐암·대장암·위암 등 주요 암종 치료에 필수적인 기초 약제들이 상시적인 수급난에 내몰리고 있다. 비노렐빈과 빈블라스틴이 대표적이다. 비소세포폐암·전이성 유방암 등의 치료제인 비노렐빈은 올해 초 오리지널 제품이 수익성 악화로 국내 시장에서 철수했고, 현재는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한 긴급 수입에만 의존하는 상태다.
림프종 등의 치료에 쓰이는 빈블라스틴 역시 제조 원가가 판매가보다 높은 역마진 구조를 견디지 못한 제약사들이 생산을 포기하면서 공급이 끊겼고 이달 기준 주요 대학병원의 재고는 바닥을 드러낸 상태다.
대한종양내과학회·대한혈액학회에 따르면 림프종 치료제인 블레오마이신도 이달 들어 수급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대체 약제가 없는 상황에서 종양내과 의료진은 일일 재고를 확인하며 처방을 유지하고 있다. 소화기암 치료제인 플루오로우라실(5-FU)과 폐암 약제인 시스플라틴도 몇달 간격으로 공급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는 파행을 겪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약가가 너무 저렴해서다. 현재 보험약가 기준 5-FU와 시스플라틴은 5000원 내외이며 빈블라스틴과 소세포폐암 치료제 에토포시드는 8000원대다. 블레오마이신과 비노렐빈 등은 2만원대에 처방받을 수 있다.
1회 투약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신약들이 대거 등장하는 사이 환자 생존율을 떠받치는 표준 항암제들은 원료비와 물류비 인상분을 감당하지 못해 만들수록 손해인 상황이 됐다. 시스플라틴의 경우 지난해 정부가 약가를 80% 인상했음에도 여전히 커피 한 잔값이 되지 않는 금액이어서 생산이 중단될 확률이 커졌다.
이상철 순천향대천안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40년 된 세포독성항암제(일반 항암제)들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약제들”이라며 “제약사 입장에서는 이익이 남지 않으니 생산할 이유가 없다. 10년 전에도 100원, 지금도 100원이니 만드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기업에 협조를 요청하면 마지못해 수입이나 생산이 재개되는데 일시 중단과 재공급이 반복되는 불확실성 자체가 환자들에게는 공포”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환자들은 생사기로에 내몰리고 있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 B씨는 비노렐빈 투약 후 종양 크기가 30% 이상 줄어드는 ‘부분관해(PR) 상태’를 유지해왔지만 최근 약제 부재로 인해 치료 중단 위기에 처했다. 임주한 인하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현행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규정상 암이 더 악화됐다는 증거(질병 진행)가 없으면 다른 항암제로 교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호전되고 있는 환자에게 의학적 판단이 아닌 ‘약이 없어 치료를 멈춰야 한다’고 말해야 할 때 의사로서 가장 큰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외 긴급 도입에만 의존하는 조달 구조도 한계로 지목된다. 국내 생산이 끊기면 희귀·필수의약품센터 수입이 유일한 통로인데, 통관 등 행정 절차로 투약이 1~2주씩 밀리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날짜에 약을 맞아야 내성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항암 치료의 특성상 이러한 공백은 환자 생존율에 영향을 주는 위협이 될 수 있다.
임 교수는 “지난달에도 긴급 수입이 계속 늦어져서 항암 일정을 미뤄야 하는 환자가 발생했다”며 “희귀약품센터에 대체약이 들어오면 상황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 물량마저 부족하다고 해 마음을 졸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보건 안보 차원에서 약가관리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글로벌 원자재 가격과 물가 상승률을 적기에 반영하는 ‘원가 연동형 약가 자동 조정제’ 도입이 대표적이다. 제약사가 개별적으로 인상을 신청하고 수개월간 심의를 거치는 현행 방식은 시장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한번 정해진 약가를 유연하게 조정해줄 시스템 자체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문제의식을 갖지 않으면 그로 인한 피해는 환자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퇴장방지의약품 제도의 실효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제조원가 보전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필수의약품을 약가 인하 대상에서 원천 배제하는 등 제약사 희생에만 의존해 온 적자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이 최소한의 채산성을 확보해 생산라인을 가동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