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던 백모(71·오른쪽)씨와 딸(41)이 28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재심 선고 공판에 참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형 선고 이후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의 강압수사가 있었다는 의혹이 일면서 지난 2023년 재심이 결정됐다. 2025.10.28.
-청산가리 탄 막걸리로 아내이자 친모 등 사상 혐의/무기징역·징역20년 확정…”위법한 수사” 재심 개시/재심 “자백 임의성·신빙성, 객관적 입증 없어” 무죄/”명예 회복하고 진범 잡는 계기로”…檢 “상고 검토”-
[경상뉴스=이경용 기자] 2009년 전남 한 마을에서 발생한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으로 중형이 확정됐던 부녀(父女)가 사건 발생 16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백씨 부녀 가족들은 무죄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고 사죄해 가족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요구했다.
광주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이의영)는 28일 존속살해 등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형이 확정됐던 백모(75)씨와 백씨의 딸(41)의 재심에서 각기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자료 만으로는 부녀의 살인 범행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부족하고 달리 인정할 증거도 없다.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 검사가 주장한 법리 오해도 없다”며 부녀의 살인·존속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1심)과 같이 무죄를 인정했다.
다만 딸 백씨의 성범죄 무고 혐의에 대해서는 자백한 점, 초범인 점을 고려해 최초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백씨 부녀는 서로 공모해 2009년 7월6일 순천시 한 마을에서 청산가리(청산염)를 넣은 막걸리를 아내 최모(당시 59세)씨와 최씨의 지인에게 마시게 해 2명을 숨지게 하고, 함께 마신 주민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던 백씨 부녀가 갈등 관계였던 아내이자 친모인 최씨를 살해했다고 봤다.
1심은 부녀의 자백 진술에 신빙성이 없는 점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유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2012년 3월 대법원은 2심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백씨에게 무기징역, 딸에게는 징역 20년을 선고해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범행에 쓰였다는 막걸리 구입 경위가 불확실한 점, 청산 입수 시기·경위와 법의학 감정 결과가 명확히 일치하지 않았던 점, 부녀의 진술 태도와 달리 검찰 작성 조서는 구체적으로 기재된 점 등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백씨 부녀는 유죄 확정 10년여 만인 2022년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을 했다.
백씨의 법률대리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실험 결과를 들어 당시 감정 결과에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했고 검찰 역시 재구성 실험이 당시 조건과 다를 수 있다며 맞섰다.
박 변호사는 증인 심문 과정에서 강압·회유 수사 의혹을 집중 추궁하기도 했다. 반면 증인으로 출석한 당시 검사·수사관들은 대체로 ‘수사에 문제가 있지 않았다’, ‘몰고 가거나 표적 수사한 것은 아니다’며 적극 반박했다.
그러나 재심 재판부는 강압 수사를 통해 확보된 주요 자백 진술의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부녀의 손을 들어줬다.
재심 재판부는 “지적 능력,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 등을 살펴볼 때 딸 백씨는 지능지수 74점 정도의 경계성 지능을 가졌다. 그럼에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최초 자백 등 여러 진술 조서 작성 과정에 신뢰관계자 동석이 이뤄지지 않은 점, 진술 거부권이 고지되지 않은 점, 자백 진술의 개연성을 볼 때 수사기관이 유도 심문을 반복적으로 했던 점이 인정된다”고 봤다.
아버지 백씨의 진술도 “초등학교 중퇴 학력 수준인 데도 모든 조서에 관해 직접 읽어주거나 확인해줬다는 자료가 없고 조서 열람권 보장이 안 된 것으로 보인다”며 적법 절차를 어긴 것으로 판단했다.
부녀의 범행 동기와 공모 관계에 대해서도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와 정황이 없다. 부녀의 부적절한 관계 관련 진술은 객관적 합리성이 없고 일관되지 않아 신빙성이 없다”며 원심(제1심)과 같은 취지로 판단했다.
막걸리 구입 경위 역시 “막걸리 공급 지역과 아버지 백씨가 구입처로 진술한 식당이 취급하는 막걸리 용량, 재심 개시 이후 새롭게 제출된 폐쇄회로(CC)TV 분석 자료에 따르더라도 부녀가 범행에 쓰인 막걸리를 구입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특히 아버지가 몰았다는 화물차가 당시 도로 CCTV에 찍힌 자료와 막걸리 실제 투여량 등 과학적 증거에 비춰봐도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결과에 따라 이 사건 막걸리에는 약 29.63g 이상 청산염이 투입됐으나 딸 백씨의 진술처럼 ‘두 숟가락’으로 청산염을 투입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진술 상 청산염 투입 시점도 실제와 일치하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이 밖에도 공소장에 적힌 것과 같은 아버지 백씨의 청산염 입수 경위 등에 대해서도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결론 내렸다.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던 백모(71)씨가 28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 결과 무죄를 선고받은 뒤 취재진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씨와 딸(41)은 지난 2009년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아내와 지인에게 마시게 해 숨지게 한 혐의(존속살인) 등으로 2012년 대법원에서 각기 무기징역과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이 불거지면서 2023년 9월 재심이 개시, 이날 사건 발생 16여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5.10.28.m
선고 직후 아버지 백씨는 하늘을 쳐다보다 붉어진 눈시울로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말로 복잡한 감회를 표현했다. 딸 백씨는 “고생한 변호사와 따뜻한 응원을 해준 가족들에게 감사 드린다”고 했다.
백씨 가족들도 “다시는 강압 수사로 헛된 피해자가 없길 바란다”,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하다. (이번 판결이) 진범을 잡는 계기가 되고 가족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고 각기 밝혔다.
박 변호사는 “오늘 판결이 무죄 확정을 넘어 가족의 명예 회복까지 나아가길 바란다. 상고 여부에 대해 검찰의 양심 있는 판단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바란다. 일주일 뒤 형이 확정되면 가족들과 상의해 형사 배상과 국가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무죄 판결에 대해 검찰은 “재심 판결문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거쳐 상소 제기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검찰이 재심 선고에 불복, 상고하면 대법원이 사건을 다시 심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