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상담·공개수업…/주요일정 3~4월 주중에 몰려/불참하면 아이 소외당할라/회사 눈치보며 잇달아 연차/시간 못내면 잠시 ‘눈도장’만/”야간으로 옮겨줬으면…”-
[경상뉴스=김관수 기자]워킹맘 이선영 씨(가명)는 지난달 27일 열린 학부모총회에 부득이 불참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의 담임 선생님을 만나 학급 운영 계획을 듣고 같은 반 학부모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기회지만 휴가를 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불과 3주 전 입학식 날에도 겨우 휴가를 냈는데 또 신청하는 게 눈치 보였다. 총회가 평일 낮 2시에 열리다 보니 일이 많은 남편도 휴가를 못 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4월은 맞벌이 부모에게 유독 가혹하다. 입학식부터 학부모회 임원 선출·투표, 학부모총회, 공개수업, 학부모 상담 등 학교 행사가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 한창 일하는 시간인 대낮에 하고 행사가 서로 다른 날에 열려 한 달에 몇 번이나 휴가를 내는 것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온라인 맘카페에는 학부모총회, 공개수업 등에 꼭 참석해야 하는지 묻는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교육부는 맞벌이 부모의 편의를 위해 전화 상담, 저녁 총회도 가능하다지만 저녁에 학부모총회를 여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저녁·주말 상담, 저녁 총회가 얼마나 열리고 있는지도 파악되지 않는다. 교육부는 “학사 일정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라 저녁·주말 행사 등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맞벌이 가정의 돌봄 공백을 해결하겠다는 정부와 학교의 엇박자는 한두 번이 아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는 돌봄교실의 신입생 서류 제출 시간이 오전 8시~오후 5시로 제한돼 부모가 휴가를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정부는 2011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법적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 행사의 경우 ‘운영위원회 회의 일시를 정할 때는 일과 후, 주말 등 위원들이 참석하기 편리한 시간으로 정해야 한다’는 조항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학부모회 임원 선거 관련 입후보 등록 기간을 평일 오전 9시~오후 4시로 제한해 사실상 맞벌이 부모를 제외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상반기 기혼여성 고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경력 단절을 겪고 있는 여성은 총 134만9000명으로, 전체 기혼 여성 가운데 17%를 차지했다. 경력 단절의 주된 사유는 육아였다.
결혼한 부부 중 맞벌이 가구가 절반에 달하면서 일부 학교에서는 행사를 합치고 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 학부모총회를 영상회의로 대체하거나 학교 행사를 최소화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 교육부는 “학부모들이 학교 행사에 참석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가족돌봄휴가제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각종 양육 지원제도와 정책을 실제로 사용하기 어려운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가족돌봄휴가는 ‘그림의 떡’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출생아 100명의 부모 중 당해 육아휴직을 사용한 휴직자 수는 35명에 불과하다. 또 고용노동부의 2022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제도를 활용하기 어려운 이유로 ‘사용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나 문화 때문’이라는 답변이 2위에 올랐다.
두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은 “정부가 늘봄학교로 돌봄 공백을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그보다 학교에서 학부모를 일과 시간에 부르는 관행부터 해결해야 한다”면서 “하루에 학부모총회, 공개수업, 상담을 몰아서 하거나 영상회의로 대체하고 불필요한 학부모 연수는 과감하게 없애거나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