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 목격자인 응우옌 득쩌이씨(왼쪽)와 피해자인 조카 응우옌 티탄씨가 9일 법정 진술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응우옌 티탄씨 등 정부 상대 손배訴/「주민에 총 쏘고 집 태워… 가족 잃어/눈·얼굴 보고 한국軍인 줄 구별」
[경상뉴스=민태식 기자]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주장하는 베트남인 피해자와 목격자가 처음으로 한국 법정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퐁니·퐁넛 마을 민간인 학살 사건’ 생존자 응우옌 티탄(62)씨는 사과와 배상은 둘째 치고 우선 한국 정부가 진실 규명에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응우옌씨는 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한국 정부 상대 국가배상 청구소송 재판에 피해 당사자로 출석했다. 퐁니 마을에 살던 그는 만 7세였던 1968년 2월 마을에 들어온 한국군의 공격으로 5명의 가족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그 자신도 배에 총상을 입고 여전히 후유증을 겪고 있다. 2020년 4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3000만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2년 넘게 법정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법정에서는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증언이 줄을 이었다. 응우옌씨는 사건 당시 한국군이 집안에 들어와 비무장 상태로 방공호에 숨어 있는 자신과 가족들에게 수류탄을 꺼내 보이며 밖으로 나올 것을 위협했다고 증언했다. “벌벌 떨던 가족들이 나가자마자 한국군은 총격을 가했다”고 했다. 쌍꺼풀 없는 눈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로 그들이 한국군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사건 목격자인 삼촌 응우옌씨도 법정에서 사건 전후 사정 등을 상세히 진술했다. 남베트남 민병대였던 그는 사건 당시 마을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초소에서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사건 후 미군과 함께 현장 수습에 나섰다고 했다. 한국군이 주민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총을 쏘는 모습, 집을 불태우는 모습을 망원경 등으로 직접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이 한국군으로 위장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이 아닌 한국 사람들이라는 것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눈과 얼굴을 보고 구별했다”고 답했다. 이어 법정에 들어온 한국인 방청객들을 가리키며 “(그들은) 여기 계신 분들과 닮았다”고 했다.
응우옌씨는 2015년 처음 얼굴을 공개하고 한국 정부와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2018년 국내 시민단체가 주최한 평화시민 모의법정에 참여해 피해 사실을 증언했고, 2019년에는 한국 정부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청와대 청원을 냈다.
응우옌씨는 변호인을 통해 국민일보에 보낸 메시지에서 “청와대 청원까지 냈지만 거절을 당하면서 2020년 국가배상 소송을 결심했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다른 무엇보다 우선 잘못을 인정하고, 퐁니·퐁넛 민간인 학살을 포함한 베트남전 문제 전반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서 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