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성숙 총리 등, 행정·공공기관 이전 및 공공기관 기능개혁 관련 기자회견ⓒ뉴시스
- -“기관 이전 속도 내되 원도심 연계한 주거·교육·의료·교통 대책 갖춰야”-
[경상뉴스=민태식 선임기자]정부가 내년부터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착수한다.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350여곳을 대상으로 이전 필요성을 검토하고 올해 4분기 중 이전 대상과 지역을 포함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1차 공공기관 이전은 참여정부에서 시작돼 2019년 사실상 완료됐다. 정부 자료를 기준으로 수도권 공공기관 약 150곳과 소속 직원 약 5만명이 세종과 10개 혁신도시 등으로 이전했다.
정부는 이번 2차 이전을 위해 2025년 9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현재 350여개 기관을 검토 대상으로 놓고 있다. 다만 350여곳 모두가 이전한다는 뜻은 아니다. 국토부도 지난 7월 “이전 대상 기관 및 이전 지역은 전혀 확정된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2차 이전의 관건은 이전 속도와 정주 여건 조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이 심화하는 만큼 기관 이전을 더 미뤄서는 안 되지만, 청사와 아파트만 먼저 짓는 방식으로는 사람과 가족의 생활 기반까지 옮기기 어렵다. 그렇다고 학교·병원·문화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뒤 기관을 이전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기관 이전에 속도를 내면서 원도심과 연계한 중장기 정주계획을 마련하고,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에 맞춰 이를 이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가족동반 이주율 71%…도시가 자리 잡는 데는 시간 필요
앞서 1차 이전을 통해 혁신도시의 외형은 빠르게 커졌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4월 발간한 ‘제1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사업 성과와 시사점’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혁신도시 인구는 23만4,684명으로 늘었고, 공동주택 공급률도 계획 대비 94.3%에 달했다.
직원과 가족의 지역 정착도 상당 부분 진전됐지만 당초 목표에는 조금 못 미쳤다. 이전 공공기관 직원의 가족동반 이주율은 71%로 정부의 2027년 목표인 75%를 밑돌았다. 정주 여건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69.4점이었다. 일부 직원은 가족을 수도권에 남겨둔 채 주중에만 혁신도시에서 생활하거나 장거리 통근을 이어갔다.
수도권행 셔틀버스에서도 이런 생활 형태를 엿볼 수 있다. 60개 이전 기관이 2010년부터 2025년까지 수도권행 셔틀버스 운영에 쓴 돈은 모두 1,990억원이었다. 조사 대상 기관 가운데 기관장이 주소지를 이전하지 않은 곳도 46개였다. 이전 전 2.66%였던 직원 퇴사율은 이전 후 3.11%로 높아졌다.
물론 가족동반 이주율만으로 1차 이전의 성과를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가족의 기존 생활 기반과 배우자의 일자리, 자녀의 진학 문제 등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주택이나 학교가 공급되더라도 가족 전체의 이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황지욱 전북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가족의 생활 터전이 현재 사는 곳에 있는데 갑자기 이주하라고 한다고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주하지 않은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아파트 단지 하나도 입주까지 4~5년이 걸리는데 도시를 만들고 정착의 성과를 살피려면 짧게 봐도 20년은 지켜봐야 한다”며 “단기간의 이주율에만 초점을 맞추면 전체적인 변화를 놓칠 수 있다”고 짚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도 “도시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새로 터를 잡아 그곳을 삶의 기반으로 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근 전주와 진주 혁신도시의 모습을 고려하면 1차 이전의 결과를 성공과 실패로만 구분하기보다 장기적인 변화 과정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족동반 이주율에는 시간과 함께 생활환경도 영향을 미친다. 배우자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 자녀가 다닐 학교와 어린이집, 응급상황에 이용할 병원, 출퇴근에 필요한 대중교통이 충분할수록 가족이 함께 터전을 옮기기 수월해진다. 특히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은 입시와 교우관계 등으로 이주 부담이 큰 만큼,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이 지역에 정착해 성장할 수 있는 교육·돌봄 환경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 나주혁신도시 자료사진 ⓒ나주시 제공
이전은 속도감 있게, 정주계획은 원도심과 함께
정부는 2차 이전의 원칙으로 ‘자족적 정주기반 확충’을 내세웠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주거·교육·의료·문화·교통 기반을 함께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조기 이전 직원에게 2년간 월 최대 50만원을 지급하고 원거리 이전 수당과 주거 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수당은 이사 과정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도의 수단이다. 실제 정착으로 연결하려면 이전 대상과 지역을 정할 때 학교와 보육시설, 의료·교통·문화시설의 기존 공급 수준과 향후 수요를 함께 살피고, 필요한 시설을 언제 어떤 재원으로 확충할지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생활 인프라를 모두 완성한 뒤 기관을 옮기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최 소장은 “의료·교육·문화시설을 모두 갖추고 내려가겠다는 것은 사실상 이전을 늦추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하는 지금은 국가균형발전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반시설이 완성될 때까지 이전을 미루기보다 정부가 이전 시점부터 수요 변화에 대응할 실행계획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나 병원 등 시설별 수요 발생 시점과 예산, 담당 기관을 정해 단계적으로 확충하고 이행 상황을 꾸준히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세부 입지와 개발 일정 공개가 부동산시장에 미칠 영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황 교수는 “계획이 외부에 공개되면 집값과 땅값이 오를 가능성도 있다”며 “계획을 모두 공개하지 않더라도 정부 차원에서는 대안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투기 방지 대책을 먼저 가동한 뒤 주민 생활과 직결되는 시설의 확충 원칙과 이행 목표를 공개하고, 개발 정보는 단계적으로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성과를 살필 때도 이전 인원뿐 아니라 가족동반 이주율과 배우자 취업률, 지역 내 통근시간, 필수의료 접근시간, 보육 대기인원 등 생활 지표를 장기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기관 배치와 주택 공급도 주변 지역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1차 이전에서는 기관을 지역별로 나누어 배치하면서 산업과 기관 간 연계나 충분한 도시 규모를 확보하지 못한 곳도 있었다. 2차 이전에서는 기관의 업무와 지역 산업·대학·연구기관의 연계 가능성을 기준으로 유사 기능을 묶어 배치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최 소장은 “이번(2차 이전)에는 분명한 원칙을 정해 추진해야 규모의 경제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에너지·농생명·문화 등 지역이 보유한 기반과 공공기관의 기능이 맞물리면 기관 이전이 지역 일자리와 산업의 확대로 이어지고 배우자의 취업 기회도 넓어질 수 있다.
최 소장은 또 “인구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는 혁신도시의 추가 주택 공급이 원도심에 미치는 영향까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거정책 역시 혁신도시의 아파트 공급량만을 기준으로 삼기보다 원도심과의 관계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1인 가구와 자녀가 있는 가족 등 이전 직원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주택 공급은 필요하다. 동시에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의 외곽에 주택을 집중적으로 공급하면 원도심의 인구와 상권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최 소장의 설명이다.
2차 이전에서는 신규 택지 개발을 당연한 전제로 삼기보다 기존 도심의 빈집과 유휴부지, 공공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할 수 있다. 혁신도시와 원도심을 대중교통으로 연결하고 학교·병원·문화시설을 공동 이용하면 중복 투자를 줄이면서 기존 상권과 공공서비스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 공공기관 합동 채용설명회 자료사진 ⓒ뉴시스
교육·의료·교통, 지역 생활권 안에서 함께 설계해야
교육과 돌봄은 가족동반 이주를 결정하는 주요 조건이다. 혁신도시는 평균연령이 낮고 영유아와 초등학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뿐 아니라 방과후 돌봄 수요까지 미리 계산해야 한다. 중·고등학교는 학교 수를 늘리는 것과 함께 지역대학·공공기관을 연계한 교육과정과 진로교육을 마련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의료시설은 배후인구가 일정 규모에 이르기 전까지 민간 사업자의 참여가 제한적일 수 있다.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응급의료 등 필수의료는 공공이 초기 수요와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혁신도시마다 대형 종합병원을 새로 짓기 어렵다면 기존 지역거점병원과 혁신도시를 연결하는 응급이송체계와 순환진료, 전문진료센터를 우선 구축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교통은 수도권 접근성과 지역 내 이동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혁신도시와 원도심, 기차역·버스터미널, 산업단지, 대학, 병원을 잇는 대중교통망을 마련하고, 행정구역보다 실제 출퇴근·통학·진료 생활권을 기준으로 노선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과의 연결성을 확보하면서도 지역 안에서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교통체계를 구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화시설은 대형 공연장이나 상징적인 시설뿐 아니라 도서관과 생활체육시설, 소규모 공연장, 청소년·공동육아 공간처럼 주민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균형 있게 마련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강당과 체육시설, 회의실을 주민에게 개방하는 것도 초기 문화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다.
시설의 양뿐 아니라 주민이 체감하는 서비스의 수준도 중요하다. 황지욱 전북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지역의 시설이 서울에 있는 시설을 능가한다는 보장은 없다”며 “서울이나 현재 살고 있는 주거지 수준의 정주 여건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주 여건을 조성하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이전기관의 역할을 미리 나눌 필요가 있다. 인구가 적고 재정 여건이 넉넉하지 않은 지역은 의료·교통·문화시설을 선제적으로 공급하는 데 부담이 클 수 있다. 국가 정책에 따라 이뤄지는 공공기관 이전인 만큼 정부가 중장기 국비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광역·기초지자체와 이전기관의 비용과 역할을 사전에 정해야 한다.
지방정부와 이전기관, 주민,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실제 이주할 노동자와 가족, 기존 주민의 요구를 계획 단계부터 반영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공공기관 이전의 목표는 청사의 주소를 바꾸거나 단기간에 가족동반 이주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과 가족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공공기관이 지역 산업·대학과 연결되며, 늘어난 인구와 공공서비스가 기존 주민의 삶까지 개선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2차 이전은 모든 시설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기관 이전과 도시의 성장을 함께 추진하는 과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이전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기존 주민과 이주 가족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주택·교육·의료·교통 계획을 갖추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시의 변화를 관리해야 한다. 1차 이전의 성과와 보완 과제를 함께 살피는 데서 2차 이전의 방향도 구체화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