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막을 세컨드하우스로 이용하는 것을 차단하려던 농림축산식품부의 시도가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사진은 한 농촌지역에 들어선 농막단지 전경.
-농식품부, 한달여만에 ‘농막 규제 강화’ 철회/논밭 ‘불법 전용’ 방지 위해/개발 행위 규제 마련 급선무
휴식공간 면적 제한 등 과도/‘농사땐 취침 가능’ 명확화를-
[경상뉴스=민태식 기자]”농막은 1가구 2주택에 걸리지 않습니다.” ‘근조(謹弔) 농막.’ 수도권 한 농촌지역에 걸린 현수막 글귀다.
농막을 ‘세컨드하우스’로 인식하는 도시민이 늘면서 빚어진 농촌 신풍속도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막이 농막답게 사용되도록 관련법령 개정을 추진하다가 ‘사람 한명이 귀한 농촌에서 농막 규제가 웬 말이냐’는 반대 여론에 부딪혀 결국 철회했다. 농지 보전과 농촌 활성화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농식품부, 농막 규제 철회=농식품부가 농막 규제를 강화하는 ‘농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입법예고를 14일 취소했다. 5월12일 입법예고 시작 후 한달여 만이다.
농막은 농자재 보관이나 농작업 중 휴식을 위해 농지 위에 설치하는 20㎡(6평) 이하 가설건축물로 현행법상 주거는 불가능하다.
개정안은 주거 기준을 구체화한 것이 핵심이다. 개정안은 농작업 없이 농막을 이용하거나 휴식 공간이 바닥 면적의 25%를 초과하는 경우를 ‘주거’로 규정했다. 이와 함께 비농민에 한해 농지 면적에 따른 농막 면적 기준도 마련했다.
개정안의 파장은 엄청났다. 도시민을 중심으로 ‘농막에서 잠을 못 자게 됐다’ ‘5도 2촌 꿈이 사라졌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언론은 ‘농촌에서 사람을 내쫓는 처사’라며 여론을 증폭했다.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농막 규제에 “신중하게 접근할 일”이라고 말한 것은 사실상 결정타였다.
◆반발 이유는=이런 반발은 어디서 기인할까. 우선 개정안에 대한 오해가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농막에서 주거는 불가능하지만 농사가 전제된 취침은 가능했다. 이는 개정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도시민이 주말에 텃밭에서 농사짓다가 하룻밤 자는 것은 가능한데, 이를 규제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농막을 값싼 별장처럼 여기는 쪽이다. 농막이 농지 위에 들어설 수 있는 이유는 농막이 농작업에 필요한 부속시설이기 때문이다. 즉 농작업과 관련 없는 농막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농작업과 무관한 농막단지를 만들어 분양하는 일이 횡행하고, 실제 농막을 세컨드하우스로 인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모두 농지 불법 전용에 해당하는데, 농촌 활성화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이런 제약을 풀어달라는 요구가 나오는 실정이다.
실제 감사원의 최근 감사에 따르면 20개 지방자치단체 관내 농막 3만3140개 가운데 1만7149개가 불법 전용·증축된 것이었다. 별장은 물론 가상화폐 채굴장으로 쓰이는 곳도 있었다. 또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설치된 농막 3만8277개 중 411개가 30㎡ 이하 농지에 들어섰다. 농지를 잘게 쪼개 농막단지를 만든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다.
농식품부는 이런 불법 전용을 막기 위해 개정안을 마련했는데 결국 무산되고 만 것이다. 박석두 GS&J 인스티튜트 연구위원은 “농막은 허가가 필요 없고 건축 규제에서 자유로워 자재비도 적게 든다”면서 “이런 간편성 때문에 농막 수요가 급증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안은=개정안을 철회한 상황에서 대안은 무엇일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법 개정 없이 농막을 지금처럼 두는 것이다. 하지만 불법 전용을 묵인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일각의 주장처럼 농촌 활성화를 위해 농막 주거를 완전히 풀어주는 것도 농식품부가 수용하기 어려운 선택지다. 농사와 무관한 농막이 우후죽순 들어설 수 있어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금도 농막 등이 들어서서 농업 생산을 못하는 면적이 농업진흥지역에만 1만2000㏊에 달한다. 경기 평택 전체 농업진흥지역과 맞먹는 수치다.
유찬희 농경연 동향분석실장은 “허가가 필요 없는 농지 이용 행위가 늘면서 농지의 체계적 관리가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농지의 편법적 전용을 통한 난개발을 막기 위해 개발 행위를 규율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농막단지 등은 단속하되 규제는 합리화하자고 의견을 낸다. 이번 개정안에서도 휴식 공간을 바닥 면적의 25%로 제한하거나 농지 면적이 660㎡(200평) 미만이면 농막을 7㎡(2평)까지만 허용한 것 등은 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 연구위원은 “실태조사를 통해 농막단지 등은 단속하되, 농지를 훼손할 목적이 아니라 농사지으러 온 사람에게는 취침이 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재입법예고를 할지 원점에서 재검토할지 등을 아직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